[일상] 99 개월 연속 근무의 끝
- 당신, 나, 우리 모두
"나 이제 나갑니다"
첫 회사에서의 8년 3개월은 너무나도 길었다. 개월 수로만 99개월이다. 건강보험납입으로 친다면 100개월 쯤 되려나?
6월 부터 준비한 퇴사는 상사, 대표와의 줄다리기 끝에 12월에서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고객사 지원에, 신규 개발에 내가 생각해도 너무 바쁠 시기였던게 문제였다.
12월을 보름 즈음 남기고, 한강 옆 식당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대표님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나와 내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사실상 초기 멤버 취급을 받던 나의 퇴사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큰 이슈 였는지, 아니면 내 자의식 과잉인지는 몰라도 여러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떠날 수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나는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사준 스마트폰을 뜯어보면서 개발자로서 눈을 떳다.
따지자면 초등학생 때부터 PC조립을 하고 있었으니, 공돌이 기질은 애저녁에 있었던거 같다.
문제는 그 스마트폰이 당시에도 구식이라서 게임은 커녕 인터넷도 버벅거리는 기계였는데, 나는 어떻게든 수소문을 해서 당시 커스텀 롬이니 루팅이니 하는 것들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앱 개발에 발을 들였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죽어라 개발 공부를 하면서 내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기성세대들에게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남들이 고민할 때 "프로그래머" 라는 직업을 자신만만하게 적어낸 나에게, 담임 선생님은 특성화고를 추천해 주었다.
당시 특성화고는 인문계와 다르게 정부의 지원으로 대부분의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당시 빚에 시달리던 집 형편에 돈에 인색했던 나는 그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입학원서를 내러 안양에서 안산까지 1시간을 내려갔다.
미친놈들 집합소
부모님은 내 맘대로 정한 진학에 걱정했지만, 나는 자신이 넘쳤다. 무슨 행동력이었는지, 원서 제출 첫날부터 학교에 쳐들어 갔으니 나도 제정신은 아니었던거 같다.
아니면 진짜로 열정이 넘쳤는지도 모르지, 지금은 다 식어서 뜨뜻미지근한데
어찌되었던 간에, 학교의 커리큘럼은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동아리/인재반 만큼은 매우 좋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몇 시간이던 동아리 실에 틀어박혀서 비싸서 못 산노트북을 마음껏 쓸 수 있었으니까.
동아리/인재반 회장같은거도 맡아서, 선생님이 수능시험 내려고 납치당한 3개월 동안 후배들을 대신 가르친다던가 하는 등 정말 재미있던 나날이었다.
오죽했으면 방학에는 여름,겨울 가리지 않고 안양에서 안산까지 학교에 나와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며 개발을 했었다.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개발자로 먹고 살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13년의 기간동안 학교에서의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는 한다.
나의 첫 회사
특성화고는 취업에 특화된 학교였기에, 나는 3학년 부터 구직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고등학생을 뽑는 기업도 거의 없거니와, 천장없는 카드깡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취업문은 좁았다.
그래도 두드리면 열린다고, 취업박람회에서 사람이 덜 몰리는 시간대를 노린 나는, 한 회사의 임원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을 수 있었다.
15년 9월, 역삼의 한 사무실에서 뵈었던 대표님은 첫인상, 첫마디 부터가 파격적이었다. 댄디한 머리스타일에 중후한 외모, 그리고 첫마디
"얼마 받을래?"
이미 날 뽑겠다는 얘긴줄은 몰랐겠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냥 놀리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워낙 사석에서는 장난기 있던 분이었으니.
다사다난 퇴직 생활
첫 입사 후 99개월이 시간이 지났음은 나도 솔직히 까마득히 몰랐다. 진짜 너무 길어서였는지, 아니면 너무 일이 많아서 뒤돌아볼 새가 없었는지.
나의 첫 회사의 이야기는 작년으로 끝이 났다, 퇴직 후 후환이 남지 않도록 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남겨두고 떠났다. 너무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와서 고객사로부터 사소한 안부 전화가 온 것은 1달이 지난 뒤였다.
6개월 간의 퇴사 준비동안 나는 다른 이직처를 알아보지 않았다. 나의 자신감도 아니었고, 무계획도 아니었던게, 쉰다면 1년도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개발은 이제 손가락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기 시작하자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었다. 물론 그만둔 건 아니고, 개인 프로젝트와 회사 일을 병행하기가 어려웠던데다, 격무에 술 담배를 하기 시작하니 1년도 가지 않아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는 지경까지 갔기 때문이다.
퇴사를 한 지금은 술도 위스키로 바꾸고 한달에 2번만 마신다. 담배는 아얘 끊어버린지 오래다.
퇴직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들도 모두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달 만나지만서도 참 신기한게, 퇴사를 하면 사라질 것 같던 인간 관계는 어떻게든 다시 이어지게 된다는 거다.
퇴사 후 이야기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서 퇴사를 한지 3개월 정도 지났다. 대부분의 휴직자들이 가지는 휴직기간 1~3개월이 이렇게나 빠르면서 느긋할 줄이야.
나는 첫 1달을 일본에서 보냈다. 인생 첫 여행, 인생의 첫 해외 경험을 짧게 가지고 싶지 않았고, 후회없는 시간을 보냈다.
1달간의 일본여행에도 나의 의욕센서는 살아나지 못했다. 그 대신 우리 집을 새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10년간 살던 빌라는 여름이면 천장에서 매일 비가 새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낡은 집이었다.
내가 취직하고, 동생이 전역하고 나서야 집에 목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빌라를 떠나 우리 가족의 첫 아파트를 찾아 2월을 보냈다. 아버지와 동생이 일하는 평택으로 발을 돌려 신축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취직 준비
순수한 코딩만으로 15년, 솔직히 내가 실력있는 개발자냐고 묻는다면 절대 NO 일 것이다. 대신 문제파악이나 고객이랑 커뮤니케이션 하는 능력은 확실하게 내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신이 실력있는 개발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개발은 하면 할 수록 모르는게 많아지고, 내가 믿고 따르던 개념이 새로운 매커니즘에 의해 재평가되기도 한다.
뭐 이상한 헛소리인가 싶지만, 나는 백엔드 엔지니어다. 극단적으로 보면 백엔드 개발자는 프론트나 디자이너처럼 보여줄 수 있는게 코드밖에 없다.
취직을 준비한지 2주쯤 지났는데, 포트폴리오가 없다는게 문제였다. 경력기술서는 나름 빡세게 적었는데 포트폴리오가 github 같은거 밖에 없으니, 인사팀에서 뭘 볼수가 있나.
어디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26세의 9년차 개발자를 넣을 팀원자리가 없어서 drop 했다는 얘기였다. 7년차 이상부터는 팀장급이라나 뭐라나.
아차 싶었다, 내가 뭔지는 몰라도 경력으로 과대평가 되고 있는 것 인가?
만 26세 9년차, 학사 학위 모두 재직중 졸업, 기사 자격증 취득 후 4년 경과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나이 역설인가? 내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군 경력만 뺀다면 나와 비슷한 연차이기에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냥 취직도 좋지만 프리랜서도 고민중에 있었다, 근데 요즘은 프리랜서도 자기 광고가 되어야 한다. 개발자에게 제일 좋은 광고는 포트폴리오가 아닌가?
근데 나는 백엔드 개발자지? 반쯤은 망했군.
그래서 준비한다. 포트폴리오
나는 Spring 기반의 웹 서비스와 Python 을 메인으로 하고 있다, 3월부터는 요 개발 블로그도 하면서 개인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있다.
마무리가 조금 엉성하지만 마치고자 한다. 앞으로 개발하며서 현타가 온다 싶으면 또 헛소리를 적으러 블로그에 들어올 생각이다.
1개월 동안의 일본 여행기도 쓰고 싶으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