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 회고] (7) 내가 눈 감는걸 허락해 줘

[2024/2025 회고] (7) 내가 눈 감는걸 허락해 줘

4~5개월간 집에 얼굴을 비친 날이 손에 꼽았다. 아마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건물 건너편에 사우나가 있단 걸 알게 된 날부터였나.

출퇴근이 4~5시간에 달하는 내 입장에서, 야근에 시달리면서 수면 부족은 정말 치명적인 요소였다.

막차를 타고 새벽 1시에 복귀해 씻고 잠들면 2시.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첫차를 타고 7시 조금 넘어 출근할 수 있다.

하루 3~4시간만을 침대에 몸뚱이를 허락하고,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질끈 감겼던 눈꺼풀이 올라가면서 안 보이던 핏줄이 선명하게 플래시 터지듯 경종을 울린다. 광역버스에 간신히 몸을 구겨 넣으면 이제 언제 내릴까, 지나치진 않을까 하는 긴장에 잠들지 못하고 멀미에 신음한다.

7시 반을 조금 넘어 도착하면 6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검토한 회의록을 메일로 보내고 회의실로 달려간다. 고객들은 다들 산뜻한 얼굴로 스몰토크를 하면서 회의실로 하나둘 모여든다. 속으로 '나도 7시 출근하고 4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면 나을까' 고민하지만, 스스로를 비교하며 고통스럽게 할 필요는 없기에 금방 잡념을 수면욕으로 감싼다.

그러다 나에게 비아냥인지 위로인지 모를 소리로, "11시에 메시지 온 거 봤다"느니, "출입 기록에 주 52시간 넘기면 안 된다"느니 하는 핀잔을 들으면 속이 갑자기 시커멓게 부글거리다가, 이내 체념 반 피곤 반으로 증발해버린다. 나에게는 샌드맨의 정령이 깃들었나 보다.

늦겨울 어느 날, 기술 협의 서류에 치이면서 밤을 지새우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건너편 맥도날드를 찾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잠과 배고픔 사이에서 싸우다 나도 모르게 몇 블록을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다 보인 투박한 사우나 간판.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귀신에라도 씌인 듯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사우나의 욕탕은 청소 시간이라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상관없으니 옷과 수납장 키를 달라고 했고, 손발만 대충 씻은 채로 수면실로 내려갔다.

그 뒤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침 6시에 사우나 복도 기둥 아래 반쯤 기대 앉아 기절해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직원인지 누구인지 모를 사람이 담요를 하나 덮어주고 갔나 보다. 스스로 내 모습이 처량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호의가 사무쳤는지, 한동안 눈물만 흘리며 눈을 껌뻑거렸다.

나는 거의 주 6일 중 3일을 사우나에 몸을 의탁했다. 주말에는 가방에 속옷과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그것도 부족하면 다이소에서 사 와 하루 이틀을 버텼다.

주변에서 미친 짓이라며 나무랐지만, 내 일을 그들이 대신할 수는 없었기에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도 나름 상처였기 때문에 적당한 호의로 받아들였다.

나는 프로젝트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하면서 4개월 말까지 제 집보다도 더 들락거린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10일권 중 4일권을 환불 없이 반납하고 그길로 여의도로 복귀했다.

내 나름대로의 졸업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