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 회고] (6)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있겠는가

[2024/2025 회고] (6)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있겠는가

不入虎穴 焉得虎子 (불입호혈 언득호자)

프로젝트는 구색은커녕 자리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어설픈 기술 협상과 애매한 기획, 그리고 방치된 회의록. 모든 부분이 약점이었고, 강점은 한 손가락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금융권 AI 프로젝트의 실상이다. 모든 협의가 불확실하고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나는 TA로 투입되자마자 PM과 협의를 진행했다.

  • 모든 기술적인 이슈와 협의는 내가 주도하되, 비용 또는 공수에 민감한 사안은 최대한 방어할 수 있도록 PM은 영업과 매일 공유할 것.
  • 불필요한 기믹성 기획 및 기능을 제외하고, 고객에게 일정에 맞출 수 있는 대안을 제안함으로써 공수를 절약한다.
  • 줄어든 공수에 맞게 불필요한 인력을 제외한다. 테스트 인력은 비상주 인력으로 전환하고 주 1~2일 스크럼 기간에만 배포 테스트를 진행한다. 빠른 결정과 행동만이 기한을 지킬 수 있다.
  • 3일 내로 모든 SA/AA 요구사항을 협의하고 공수를 재산정하여 마일스톤을 재배치한다.

내 기준은 단호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연히 고객은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현 RAG 시스템의 한계와 비정형화된 데이터로는 신뢰도가 낮음을 인지시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금융권 프로젝트다 보니 내부 IT 운영팀과의 갈등이 적지 않았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들은 쉽게 얼굴을 붉혔다. 이해했다. 그들은 언제나 뒷수습을 하고 날아드는 핀잔을 피할 수 없는 과녁이나 다름없는 입장이었으니까.

나는 운영팀을 설득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부서에 적잖이 소명했음을 밝혔고, 운영 시의 위험과 혁신금융서비스의 보안 심의 통과를 위해 적잖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역시 사람 본질은 갑질이다 보니, 날아드는 실내화와 고함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실내화에는 아침부터 뛰어다닌 땀이 스며있었을 것이고, 날카로운 고함에는 신음이 섞여있었기에 나는 그들을 속으로 연민했을 뿐이다.

4개월간 지옥 같은 수레바퀴를 굴려댔고, 다행히도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다. 정말 아쉽게도 갑자기 날아든 금융보안원의 추가 보안 심의로 인해 2개월간의 추가 맨먼스가 생긴 건 큰 흠집이 되었다.

나는 TA로서 컨테이너 이미지 작업과 DB 설계, 그리고 Kubernetes 배포 및 관리 작업을 맡았던지라 끝까지 남아 검수 도장을 받고 나왔다.

첫 AI 프로젝트를 이 정도 출혈로 마무리한 건 정말 다행이었다. AI 사업 특성상 임원진들은 커다란 과실을 먹고 싶어 하지만, 열매는 쉽게 열리지 않는 법이다. 씨앗을 심을 줄 알아야 그 단맛을 알게 되는 법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