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 회고] (5) 돌아온 탕아

[2024/2025 회고] (5) 돌아온 탕아

먼저 선수를 친 건 연구소장 쪽이었다.

여의도 공원 회동 후, 이틀도 채 되지 않아 메일이 하나 날아들었다. 익숙한 경영지원팀 차장님의 주소, 그리고 계약서 서류와 전자결재 링크. 계약 조건은 정확히 내가 제시한 대로 적혀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납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갑작스러웠다. 메일을 보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더군다나, 계엄 해프닝으로 인해 정부 주도 사업 중 하나였던 현 프로젝트가 풍비박산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PM은 정직원 전환에 대해 미적지근하게 나왔다.

이제는 4인 가족의 한 기둥을 맡게 된 입장으로서, 불확실한 길을 걸을 순 없었다.

12월의 어느 날, 나는 내 입장을 명확히 말한 뒤 계약 일자까지의 업무를 마치고 이직하기로 했다. PM도 회사가 바로바로 답변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답답해했고, 나에게 미안해했다.

그래도 나는 어린 나이에 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여 즐거운 송년회를 보냈다.

다음 날, 나는 두 번째 송년회에 갔다. 어제의 숙취가 가시기도 전 아침부터 메시지를 받았는데, 강북 어딘가의 예식장이었다.

아직 입사도 안 했는데 송년회를 부르는 회사가 있나, 참.

반가운 얼굴도 많았고, 낯선 이들도 많았다. 다행인 것은 모두 건강하고 근심이 적어 보였다는 것. 적어도 내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귀찮게 할 만한 일은 없다는 조짐이었다.

복귀하냐는 질문에 나는 침묵과 웃음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연회를 즐겼다. 보름 뒤면 다들 알게 될 테니 말이다.


1월 1일. 뛰쳐나온 지 정확히 365일 만에 나는 복귀했다. 걱정과 다르게 다행히도 주변에서는 그냥 1년 정도 쉬고 온 사람으로 대해주었는데, 내가 없는 동안 다들 맘고생 몸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1월 당시 금융권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었는데,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기능 개발에만 치우친 채 문서 작업, 유지보수나 배포에는 털끝 하나 신경 쓸 여력이 없었는지 난장판이었다.

이래서 개발자만 있는 조직은 안 된단 말이다. 나는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낮게 혀를 찼다.

다시 시작이다. 우선 DB 설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