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 회고] (4) 여의도 공원 잔혹사

[2024/2025 회고] (4) 여의도 공원 잔혹사

나는 여의도 공원이 싫다. 공원 자체는 정말 좋은데,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나를 어렵고 곤란하게 만들었다.

정직원 전환이냐, 프리랜서로 다른 사이트를 찾아볼 것이냐. 고민하던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첫눈이 오기 전, 아직 햇빛이 아스팔트를 데우고 사람들이 바람을 헤치는 점심, 전화가 울렸다.

전 직장의 상사이자 연구소장. 나를 뽑아주고 키우고 부려먹던 영감. 미우나 고우나 서로 면전에서 욕을 하건,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뒷담을 하지 않던 사람과의 전화였다.

내가 여의도로 복귀했음을 이 사람은 알고 있었다.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다가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산책 한 번 안 하던 사람을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만나 놀랐는데, 덕분에 연락을 받았을 때는 별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커피 한잔 하자, 내가 살께"

안부 인사고 뭐고 다 제치고 하는 첫마디. 단순히 '밥 한끼 하자'는 한국인의 버릇없는 약속과는 다르게, 그와 나의 관계는 이 대화 하나로도 정리할 수 있었다.

여의도 공원 중심에는 관광용 열기구가 하나 있다.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 은근 자주 뜨고 내린다. 그 앞에서 나는 콜드브루가 담긴 플라스틱 컵의 빨대를 연초 태우듯 씹으며, 오랜만에 만난 내게 투덜거림과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듣고 있었다.

이전 동료들과 연락을 자주 하다 보니 나름 눈치를 챘는데, 내가 떠나고 새로이 자리를 잡은 분들과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았나 보다.

나도 딱히 손발이 잘 맞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일을 알아서 찾아서 했을 뿐이다. 필요하다 싶은 일이면 짬을 내서 하거나 우선순위를 바꿨고, 제안서 작성 같은 귀찮은 일들은 때로는 뭉개기도 했다.

작금의 상황을 미루어 보아, 연구소 내부에 중간 윤활 역할을 할 허리가 없으니 직원들 간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듯했다. 워낙 직설적이고 입에 발린 말을 안 하는 성격이다 보니, 종이에 손 베일까 다들 어려워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당장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몇 가지 있는데, TA 수준의 업무를 맡아줄 인력이 없어 영 시원치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몇몇 상황들과 인력 배치를 들어보니, 내가 못 할 업무는 없었고 귀찮은 상황들이 몇 개 엮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솔직히 이전 퇴사는 급여나 대우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했을 뿐이다. 무급 휴가를 신청했으나 돌아온 건 프로젝트 일정 독촉이었고, 퇴사를 선언한 후 6개월간의 조정 끝에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떠난 지 1년도 안 된 내가 다시 돌아가는 건 내심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역으로 연구소장도 1년도 안 돼 나를 다시 부르는 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서로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조건은 명확했고, 임원들 간의 조정 끝에 연락을 주기로 했다. 추가로 현 프로젝트의 PM에게도 11월 내로 정직원 전환과 관련된 가계약 일정을 협의하기로 했다.

누가 됐든 나에게 먼저 선을 제시하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고, 나는 이 점을 명확히 양쪽에 전달했다.